[조선의 흔한 애주가들] 세조, 술로 조선을 평정하다

세조가 사랑했던 술문화를 알아보자.


오늘은 우리 역사 속의 인물을 다루어 볼까 합니다. 바로 조선 제7대 임금 세조입니다. 여러분은 ‘세조 임금’ 하면 어떤 게 떠오르나요? 조카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폭군, 조선 최초의 법전인 <경국대전>을 편찬한 왕, 어쩌면 영화 <관상>의 주인공인 배우 이정재 씨를 떠올리는 분들도 있겠죠?


▲ 어진화사 김은호가 1930년대에 그린 세조 어진 초본. 현존하는 세조 어진은 조선시대 원본과 김은호가 초본을 토대로 완성한 모사본 모두 1954년 화재로 소실되어 위 초본이 유일하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그런데 사실 ‘세조’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술 얘기입니다. 세조는 왕위에 오르기 전 수양대군 시절부터 술자리를 즐기기로 유명했습니다. 그는 술을 마시기도 잘 마셨지만 술자리에서 놀기도 잘 놀아서 조선시대 한 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수양대군이 대접하는 술자리에 꼭 가보라’는 말까지 돌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가 술자리에서 문란하거나 사치스럽지는 않았다고 해요. 실록에도 세조는 '검소했다'고 합니다. 기생이나 궁녀를 좇지도 않고 순전히 술 그 자체만 즐겼다고 하니 거하게 취해서 추태부리는 일이 흔한 오늘날 일부 높은 사람들이 본 받아야 할 '술꾼의 모범'이라고 하겠습니다.


술과 관련된 일화도 많습니다. 세종 즉위 32년 되던 해(1450년)의 일입니다. 명나라에서 사신이 왔는데 세종과 세자(훗날 제5대 임금 문종)가 동시에 와병이 들어서 두 사람 모두 사신을 접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원칙적으로는 왕이 나갈 수 없다면 왕의 아들인 세자가, 그도 나갈 수 없다면 세자의 아들인 세손이 맞이하는 것이 맞았지만 그 당시 세손(훗날 제6대 임금 단종)이 9살 밖에 되지 않아 조정에서 사신 접대를 두고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 때 세종의 둘째 아들이자 술자리에 익숙한 수양대군이 9살 세손 대신 명나라 사신을 접대했는데요, 술자리에서 얼마나 신나게 놀았는지 이 일로 명나라에서는 수양대군에 대해 우호적인 여론이 형성되었고, 조정의 대신들도 수양을 다시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본래 왕권과 거리가 멀었던 수양대군으로서는 정치적으로 급부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죠.


세조는 왕이 된 후에도 조정 대신들과 자주 술을 즐겼습니다. 술자리에서 정사를 논의했다고 해서 세조 시대 정치를 ‘주석(酒席) 정치’라고 할 정도입니다. 세조실록에 술자리를 마련한다는 뜻의 ‘설작(設酌)’이라는 말이 431건이나 등장하니 재위기간 14년 동안 연평균 30차례나 대신들과 술판을 벌인 셈입니다. 경전을 바탕으로 토의를 하는 ‘경연(經筵) 정치’를 편 아버지 세종보다 열 배나 많은 수입니다. 경복궁 내 연회장이었던 경회루뿐 아니라 왕의 집무실인 사정전, 왕의 침전인 걍녕전, 왕비의 거처인 교태전 등 술자리 장소도 다양했습니다. 세조시대 대신들은 정사에도 능하면서 주량도 세야 하니 무척이나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 ‘군신 간에 서로 덕으로써 만남’을 의미하는 경회루. 왕이 연회를 베푸는 자리로 쓰인 경회루는 역설적이게도 수양대군이 단종을 압박하여 옥새를 넘겨받은 자리이기도 하다.

술자리가 많았던 만큼 술자리에서 실수해 얼굴을 붉힐 수 밖에 없었던 대신들의 이야기도 더러 있습니다. 세조는 대신들의 웬만한 실수는 눈감아줬다고 하는데요, 세조 즉위 4년(1458년) 경복궁 경회루에서 벌어진 술자리에서 거하게 취한 정인지가 왕의 면전에 대고 ‘너’라고 부르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당연히 동석한 신하들 모두 깜짝 놀랐고 왕에게 정인지를 엄벌하라고 청했습니다. 그러나 정인지를 아낀 세조는 ‘정인지의 일로 찾아와서 말하는 자가 있더라도 아뢰지 말라’며 정인지의 실수를 넘겨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세조도 끝내 좌시하지 않고 뒤끝을 보인 사건도 있습니다. 세조 즉위 12년(1466년)의 일입니다. 정변으로 집권한 세조는 무장을 쉽게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 번 믿을 만한 인물이 생기면 그에게 두고두고 직책을 맡기고는 했습니다. 계유정난에 참여하고 한명회의 천거로 도절제사 자리에 오른 양정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세조는 양정 외에 달리 믿을 사람이 없어서 10여 년 동안 그를 다른 자리에 보내주지 않고 평안도와 함길도 절제사에 역임시켰습니다. 10년이 되도록 승진도 못하고 변방에만 머물게 돼 불만이 쌓인 양정은 세조가 베푼 위로연에서 ‘오랫동안 왕위에 계셨으니 이제 그만 물러나서 여생을 편하게 보내시라’고 진언했습니다. 정정하게 살아있는 왕에게 선위(왕이 살아서 왕위를 물려주는 일)를 하라니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격노했죠. 양정은 한명회와 신숙주의 손에 끌려가 성문 밖에서 참수되었고, 그의 아들들 역시 관노(관가에 속한 노비)가 되고 말았습니다.

술자리에서 때로는 대인배가 되기도, 때로는 ‘뒤끝 작렬’이 되기도 한 세조. 임금의 술자리도, 그에 얽힌 이야기들도 요즘을 사는 우리네 술자리와 별반 다를 바 없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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